9.2 이탈리아 (피렌체/로마/피사/밀라노)

 본 여행기는 여행에 초점을 맞춘 글로, 반말로 서술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2014년 1월 16일. 로마에 가기 전에 피렌체의 외곽에 있는 더 몰 아울렛과 프라다 스페이스에 갔다. 10시에 판매를 시작하는데 그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인들은 단체로 일찍 와서 다 쓸어가기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구매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프라다 스페이스는 더 몰에서 좀 더 차를 타고 갔는데, 싼 품목(당시에 남자 지갑이 우리나라에서 45만원에 판매되는 것이 이곳에서 20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은 우리나라보다 60~70% 더 싸서 내 친구들은 다 하나씩 샀지만 나는 돈이 없어서 살 수 없었다... 모든 쇼핑을 마치고 다시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 도착해서 숙소 체크인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왔다. 마땅히 먹을 곳이 없어서 숙소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6유로를 지불하고 토마토 파스타를 먹었다. 약간 짜긴 했지만 양도 엄청 많고 맛있었다. 역시 피자와 파스타의 본고장에서 먹는 본토 요리는 절대 실패가 없는 것 같다. 식사 후 다시 숙소로 올라가서 공금정리를 하는데 생각하지 못한 베네치아 수상버스 티켓요금과 여행하면서 자동차 기름 값이 많이 들었다. 이러다가 이탈리아 여행이 끝나기 직전에 공금이 바닥날 판이었다.

 

 2014년 1월 17일. 이탈리아 여행 5일차, 유럽여행 26일차에 들어섰다. 아침을 어느 피자집에서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면서 시작을 했다. 한 조각이 손바닥 두 개정도 크기인데 가격은 2~3유로 밖에 안하고 맛있었다. 피자를 아침 식사로 먹고 하루의 관광을 시작하였다.

 

 이날의 첫 관광지는 로마의 4대 성당으로 유명한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갔다. 다른 이름으로는 ‘바실리카 리베리아나’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352년 8월 5일 더운 여름날에 교황 리베리오는 꿈에 성모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성모 마리아는 눈이 내린 자리에 교회를 하나 지으라는 계시를 내린다. 더운 여름에 눈이 올 일이 없지만, 실제로 교황은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교회가 세워질 만한 곳에 하얗게 눈이 내린 것을 발견하였고, 그 자리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소성당의 제단 위에 이 ‘눈의 기적’에 관한 내용이 부조로 그려져 있으며, 이러한 전설 때문에 교회는 매년 8월 5일 하얀 꽃잎을 흩뿌리며 ‘눈의 기적’을 경축한다고 한다. 교황은 352년에 계시를 받았으나 실제로 성당의 기초를 세운 것은 431년이다. 또 13세기에 재건축 되었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보수되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들을 지니게 되었다. 교회 내부에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예배당과 지하 묘지에 자리한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우뚝 솟아 있는 높이 75m의 로마네스크식 종루도가 있는데, 오래된 기초 위에 1370~1378년 동안 개조한 것이다. 피라미드 모양의 뾰족탑은 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당을 둘러보고 걸어서 콜로세움을 보러 갔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이며,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글라디아토르(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의 시합과 맹수연기 등이 시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이었다. 그리고 로마 정치가들에게 이 경기장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을 도모하며 때로는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고, 층별로 앉을 수 있는 계급이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왼쪽 아래의 사진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으로,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설계하여 315년 봉헌하였다고 한다. 높이 21 m, 너비 25.7 m, 안길이 7.4 m로, 본체는 흰 대리석을 사용하였으며, 아치 등의 일부에는 색채석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조금 걸으면 티투스 개선문과 포로로마노가 나온다. 티투스 개선문은 81년 티투스가 사망한 직후 그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한 동생 도미티아누스의 명에 따라 건설되었다. 개선문은 티투스가 거둔 가장 찬란한 승리인,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을 때 최고조에 달했던 유태인 반란을 진압한 일을 칭송하는 여러 개의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이 조각에는 로마 병정들이 신전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나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황제가 사후에 신격화되는 모습도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치 아래의 둥근 천장에는 티투스가 거대한 독수리의 날개 위에 타고 높이 올라 천국으로 승천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지역은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주변의 언덕들이 마주치는 곳이어서 도시를 방어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다. 이 지역은 당시에 신전, 바실리카, 기념비 등의 건물들로 구성된 도시 공간으로 공공생활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나중에는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약 1,000년 동안 로마제국의 심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283년 화재로 파괴된 후 복구되긴 했으나 중세 이후로는 건물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쓰기도 했다. 그 후 1871년에 발굴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한때는 막강하고 위엄 있는 건물들이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아직 옛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한 때 과거 로마의 핵심지역을 걸으며 느껴볼 수 있다.

 

 오전 관광을 마치고 콜로세움 주변에 중식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나는 치킨볶음밥과 탕수육을 먹었다. 생각보다 기름기도 적고 깔끔해서 놀랐었다. 그래도 역시 중국요리는 우리나라 배달 중국요리가 최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어서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에 갔다. 전쟁기념관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에마뉴엘레 3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건물의 양쪽에는 두 개의 분수가 있는데, 이탈리아의 동·서해 바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베네치아 광장은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면에 기둥이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깔끔한 흰색으로 좌우대칭이 완벽한 건물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걷다가 로마 젤라토 3대 맛집 중 하나인 지올리띠(giolotti)에 갔다. 유명한 맛으로는 ‘수박맛’ 이라고 한다. 원래 줄이 문 바깥까지 나온다고 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우리가 어느 젤라토 집을 가도 항상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젤라토를 먹고 판테온에 갔다. 판테온은 기원전 25년에 로마의 모든 신들을 모시기 위해 처음 만든 신전으로, 120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로마의 대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때 완성된 것이다. 목조 틀과 벽돌로 형틀을 이루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었으며 원형 천장에는 지름 7.5m의 둥근 창을 뚫어 놓았다. 원형 본당의 안지름과 천장의 높이는 43.2m, 벽의 두께는 6.2m, 기둥 높이는 12.5m이다.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비례를 자랑하는 대표적 건물로 훗날 르네상스 시대의 원당 형식 건물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판테온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긴 나보나 광장에 갔다. 중세기 동안에 민중들의 축제행사가 이곳에서 계속 열렸고, 19세기에도 떠돌이 생활을 하는 코미디언들이 나와서 대중들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에는 성탄절에 커다란 마켓이 들어서고, 평소에는 주로 위의 사진과 같이 본인이 그린 그림들은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광장엔 총 세 개의 분수가 있는데 조각들이 모두 역동적이고 현실적으로 잘 조각되어 있다.

 

 해가 저물 무렵 세계 최소의 독립국인 바티칸 시티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의 로마 북서부에 있는 가톨릭 교황국이다. 19세기 이탈리아가 근대 통일국가로 바뀌면서 교황청 직속의 교황령을 상실하게 되자, 1929년 라테란 협정을 통해 이탈리아로부터 교황청 주변지역에 대한 주권을 양도받아 안도라, 산마리노와 함께 세계 최소의 독립국이 되었다. 인구는 2012년 기준 836명이며, 들어갈 때에도 역시 여권과 함께 소지품 검사를 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복장도 민소매나 미니스커트, 반바지, 샌들과 같은 복장은 입장이 금지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시티 투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 베드로 성당과 앞의 산 피에트로 광장만 보았다. 바티칸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인 이 성당은 349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베드로 성인의 묘지 위에 세워졌고 실베스트로 교황이 396년에 대성전으로 축성하였다. 성당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성당에 매달렸다고 한다. 성당의 외부도 근사하지만 내부 또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중앙 통로의 길이가 약 186m, 폭이 140m 높이는 46m이고 중앙의 제대에서 돔까지의 높이는 137m이므로 로마 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셈이다. 대성당 내부에는 44개의 채플과 395개의 조각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135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마치 미술관 같은 건물 내부를 다 둘러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산 피에트로 광장은, 1656년에서 1667년 사이에 세워진 로마와 경계를 짓는 동시에 광장을 에워싼 열주로 신앙심 깊은 순례객들을 끌어안는 '열쇠구멍' 설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천재의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 깊이가 1.2미터인 열주는 몇 겹으로 늘어선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로는 바로크풍 인물상들이 서 있다.

 

 

 바티칸 시티를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3대 젤라토 맛집중 하니인 올드 브릿지(old bridge)에 갔다. 이곳도 원래 줄을 서서 먹는 곳인데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젤라토를 이탈리아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 어느 집이 어느 맛이 나고 어떤 집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젤라토를 먹고 포폴로 광장으로 갔다. 포폴로 광장이란 이탈리아어로 '민중의 광장'을 뜻으로, 로마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중심 광장으로 이곳에서 많은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포폴로 광장은 보르게세 공원의 북쪽에 위치하며, 사진과 같이 남쪽 방면으로 로마 시내 중심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큰 길이 만난다. 광장에서 직진하면 코르소 거리, 왼쪽으로는 바부이노 거리, 오른쪽으로는 리페타 거리가 나온다. 중앙 코르소 거리를 대칭으로 2개의 바로크식 교회가 있는데, 오른쪽이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교회, 왼쪽이 산타 마리아 데이 몬테산토 교회다. 오른쪽 교회의 돔은 둥근 원, 왼쪽 교회는 타원으로 약간의 차이가 난다. 그리고 광장 중앙에 높이 36m의 오벨리스크가 서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기원전 3세기 것으로 로마의 오벨리스크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포폴로 광장을 지나서 조금 걷다 보면 스페인 광장이 등장한다. 17세기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여 유명해졌으며,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스페인 계단은 17세기에 이 지역의 프랑스인 주민들이 교회와 스페인 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에는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쓸모없는 오래된 배’라는 뜻) 분수가 있는데, 당시에는 공사로 인해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포폴로 광장을 보고 숙소로 가는 길에 3대 젤라토 마지막 맛집인 파시에 갔다. 이로서 로마의 3대 젤라토 맛집을 모두 섭렵하게 되었는데, 사실 맛의 차이는 못 느꼈다. 모든 집이 다 맛있었다. 이곳은 1880년에 문을 열었으며, 2유로도 안 되는 가격(가장 작은 사이즈)으로 세 가지 맛을 맛볼 수 있다. 젤라토 위에 생크림을 얹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가서 로마에서 긴 하루를 마무리 했다.

 

 2014년 1월 18일. 이 날은 피사를 잠시 들렸다가 다시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처음에 바티칸 미술관에 갔다. 바티칸 미술관은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과 바티칸시국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궁전, 미술관, 박물관을 전부 지칭한다. 약 1,400실에 이집트, 그리스, 아시리아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조각품, 명화,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바티칸 미술관의 매우 중요한 작품들만 둘러보는 데에도 약 2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우리도 2시간 정도만 빠르게 보고 나왔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바티칸 미술관은 인파로 인한 혼잡을 막기 위해 일방통행으로 관람하도록 되어 있다. 입장 대기줄이 워낙 길어 일찍 갔는데도 사진과 같이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2시간 관람을 하고난 뒤, 타워 브릿지 젤라토를 먹고 로마를 떠났다.

 

 약 300km를 달려서 피사에 도착했다. 피사에는 세례당, 피사대성당과 피사의 사탑 말고는 뚜렷한 관광지가 없기 때문에 이것만 보고 다시 피렌체로 향했다. 왼쪽사진에서 차례대로 세례당, 대성당, 종탑이다. 대성당은 1063년 부스케투스의 설계로 착공, 1118년에 헌당식을 올렸고, 1272년 이후에 라이날두스에 의해 회당부가 서쪽으로 연장되었다. 대성당의 앞에 세워진 세례당은 디오티살비의 설계에 의해 1153년에 착공되었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종탑은 이 종탑은 원래 수직으로 똑바로 서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착공 때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진흙, 고운 모래, 조개껍데기 등으로 구성된 미끄러운 토대 위에 밑돌을 놓는 바람에 곧 눈에 띄게 함몰이 되었고, 1178년에는 겨우 세 층밖에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중지되었다. 기울어지는 각도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1272년 이후로 경사의 장력을 상쇄시키기 위해 더 무거운 자재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1838년 기단부 주위로 통로를 파는 바람에 홍수가 나서 더욱 심하게 기울어 졌다고 한다.

30분정도 빠르게 구경하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로 80km를 달려 피렌체로 향했다. 숙소에서 공금 정리를 하는데 공금이 거의 바닥이 났다. 앞으로 유럽에서 보내야할 시간이 일주일정도 남았는데 기름값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이때부터 하루에 2끼 정도는 본인이 본인 돈으로 해결을 하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관광을 마치고 출국까지 남은 약 5일은 다시 프랑스에 가서 저렴하게 관광하고 지내기로 했다.

 2014년 1월 19일. 오전에 피렌체 관광을 다시 했다. 이로서 웬만한 유명 피렌체 관광지는 세 번씩 보게 되었다. 저녁식사는 이제 사비로 각자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친구 두 명과 같이 양파, 파스타소스와 면을 사서 토마토 파스타를 해먹었다. 그리고 냉동피자를 사서 모짜렐라 치즈를 얹고 햄을 올려서 숙소에 있는 오븐으로 구워 먹었다. 이렇게 푸짐하게 먹어도 매우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마지막 하루는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2014년 1월 20일. 피렌체에서 출발해서 15시에 밀라노에 도착했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관광을 하러 나섰다. 두오모 광장과 큰 아케이드 건물을 볼 수 있다. 건축가 주세페 맹고니가 설계하여 1865~187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 곳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으로 불리거나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으로 불린다. 19세기 쇼핑아케이드로서 지금까지도 쇼핑거리로서 다양한 명품들이 들어서 있다.

 

 위의 사진에 있는 밀라노 대성당의 탄생과정은 매우 험난하면서 신기하다. 1386년, 대주교 안토니오 다 살루초는 옛 로마 유적지 자리(밀라노의 정중앙)에 십자형 네이브와 트랜셉트로 이루어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후 500년 동안 재정상의 문제로, 설계상의 문제로 큰 진척 없이 공사는 더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건물의 외부는 건설 시기의 다양한 양식들이 녹아들었다.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들이 존재하고, 복잡하면서도 건물 자체로서는 아주 근사하다. 수많은 피너클에 플라잉 버트레스, 복잡한 격자무늬 창살로 장식한 동쪽 파사드는 프랑스 고딕 스타일, 팔각형의 르네상스 쿠폴라, 17세기 양식의 복도, 18세기 스타일의 스파이어, 거기에 신고전주의 파사드까지 존재하는 독특한 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당의 규모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 다음으로 가톨릭 대성당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으로 4만 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밀라노 대성당을 구경하고 걸어서 다음 관광지로 향했다. 이곳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오페라극장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라 스칼라 극장이다. 1778년 당시 밀라노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에 따라 교회 자리에 세운 것으로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개조되었다고 한다. 수용인원이 3,6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주변에 이 극장건물과 비슷한 상업 은행이나 건물들이 있기 때문에 유사품(?)에 주의해야 한다. 라 스칼라 극장을 끝으로 21시에 숙소에 들어와서, 친구들과 다음 프랑스 계획을 세웠다.

이로서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피사, 밀라노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7박 8일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정말 길고 다양한 일들이 있었던 이탈리아. 젤라토, 피자, 파스타를 제대로 맛 볼 수 있었던 이탈리아. 소매치기로 유명하고 치안이 취약한 이탈리아. 나는 총무로서 공금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항상 내 가방을 신경 쓰면서 다녀서 더욱 피곤한 관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