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체코 (프라하)

 본 여행기는 여행에 초점을 맞춘 글로, 반말로 서술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2014년 1월 4일. 뮌헨 ‘Augustiner-Keller’에서 저녁식사를 마지막으로 먹고 17시 30분에 체코 프라하로 향했다. 약 400km를 달려서 21시 30분에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잠시 은행에 들려서 체코 화폐 단위인 코루나를 뽑기 위해 도로 갓길에 주차를 했다. 돈을 뽑고 차로 돌아갔는데 친구들이 경찰 두 명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우리가 갓길에 불법정차를 했다고 벌금을 내라는 것이다. 그들은 1000코루나(당시 약 6만원)를 당장 현금으로 내라고 계속 강조를 했다. 우리가 내려고 했으나 전에 워낙 사건사고가 많은지라 의심이 들었다. 혹시 말로만 듣던 가짜 경찰 사기가 아닐까? 우리는 경찰들에게 내일 우리가 경찰서 가서 범칙금을 지불하거나 같이 지금 경찰서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지금 돈을 달라고 주장을 했다. 말이 안통해서 한국대사관에 전화해서 이 경찰들을 설득시키려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터넷으로 체코 경찰 유니폼을 검색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지가 달랐다. 그리고 대사관 관계자가 계속 설득을 하는데 경찰들이 돈을 지금 받아야 된다면서 계속 같은 주장만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한 시간을 허비하고 우리도 슬슬 짜증나서 언성을 높였다. 우리 다섯 명이 가짜 경찰 두 명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붙였다. 결국 그들은 잠시 어디 다녀오겠다면서 사라지고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이래저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이때까지 한국에서 파리 가는 비행기 놓치고, 친구가 벨기에에서 소매치기 당하고, 영국 입국심사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 잘못 예약된 것 확인하고, 영국에서 불법주차 범칙금, 여권 분실, 체코에서 가짜 경찰 사기 위험까지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요기서 끝이 아니다.

 

2014년 1월 5일. 자동차는 전날 숙소 주변에 주차시킨 곳에서 오스트리아 갈 때까지 계속 주차를 시키고, 프라하 관광은 차 없이 걸으면서 관광하기로 했다.(프라하는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걸으면서 충분히 관광할 수 있다.) 10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프라하 관관을 시작했다. 첫 관광지는 화약탑이다. 1475년 지금의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 성문 가운데 하나이자, 대포 요새로 건설되었다. 이후 총기 제작공이자 종 주조공인 야로스의 거처 겸 작업실로 개축되었다가, 루돌프 2세 때인 17세기 초에 연금술사들의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이면서 화약탑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딕 양식의 탑으로, 높이는 65m이며, 총 1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옛날에는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소이자, 외국 사신들이 프라하성으로 들어올 때 꼭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이용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화약탑을 보고 좀 더 걸어서 구시가지 광장에 갔다.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은 11세기 형성된 이래 오늘날까지 광장으로 쓰고 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공화국 몰락 선언,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 혁명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 틴 성당, 구시청사, 천문시계 등 다양한 볼거리가 구시가 광장 주변에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지난지 한참 뒤였는데 아직도 크리스마스의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아무래도 광장에 대형트리와 빨간 천막을 두른 노점상들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광장에는 공연을 해서 본인들의 음반CD를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위의 사진과 같이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트릭을 써서 위의 사람이 공중부양을 하고 편하게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잠시 쉴 때나 자세를 바꿀 때는 사진의 오른쪽과 같이 천막을 씌워서 본인들의 영업 비밀(?)을 숨긴다.

 

구시가지를 둘러보면서 구시청사도 보았다. 구시가 광장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1338년 고딕 양식으로 지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로 상당 부분 훼손됐다. 그 후 복원과 증축 공사가 진행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구시청사는 특히 독특하고 화려한 천문시계가 설치된 탑으로 유명하다. 1410년 만들어진 천문시계 아래의 둥근 판에는 별자리가 그려 있고, 둘레에는 열두 달을 농민의 생활모습을 빌려 표현해놓았다고 한다. 천동설에 기초해 만들었다는 이 천문시계는 시간, 일출, 일몰, 월출, 월몰까지 표시해준다. 만든 지 600년 되는 시계로 처음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구시청사 안에는 역사박물관, 예배당, 집무실 등이 있다. 예배당에서는 천문시계 내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매시 정각이면 시계에서 12사도가 나왔다 사라진다. 이 광경을 보려고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드디어 프라하의 최고 관광 중 하나인 구시청사 탑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프라하 구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뾰족하고 빨간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 같다. 왼쪽 아래 사진에서는 멀리 프라하성이 보인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를 보면 광장이 한 눈에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프라하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다면 낮에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밤에는 어둡고 조명 때문에 위의 사진과 같은 프라하만의 아름다운 관경을 보기 힘들다.

 

 

 

 

 

 

구시가지를 벗어나 블바타 강변에 프랭크 개리가 설계한 ‘춤추는 건물(dancing house)’을 보러 갔다. 이 건물은 현재 ING 생명보험의 건물로 이용되어지고 있다. 주변이 모두 고풍스럽고 유럽의 전형적인 건물형식을 띄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비정형의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더 눈에 돋보이는 것 같다.

이 건물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옆 건물에서 프라하성이 안보일 수 있기 때문에 유리의 옆면을 옆으로 눌러 매스스터디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 건물은 ‘프레드와 진저’라고 불리기도 한다.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댄싱 커플인 프레드 에스테더와 진저 로저스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근사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다. 사진에서 보면 한 커플이 우산을 쓰고 있는데 이날도 역시 비가 왔다. 이날까지 총 유럽여행 14일 동안 약 이틀 빼고 다 비가 왔을 정도로 유럽에는 비가 자주 오는 것 같다.

 

저녁식사를 하러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우 베이보두(u vejvodu)’에 갔다. 체코의 전통요리인 꼴레뇨와 굴라쉬를 맥주와 함께 먹었다. 꼴레뇨는 독일에서 먹은 학센과 비슷하다. 족발과 비슷한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소스와 함께 찍어먹을 수 있도록 깔끔하게 나왔다. 그리고 굴라쉬도 소스를 듬뿍 줘서 빵에 찍어먹을 수 있도록 나왔다. 확실히 현지에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유럽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팁을 주는 문화가 있다. 유럽이나 캐나다, 미국이 대표적으로 팁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대충 10% 주면 되는데 우리는 이 때 팁을 까먹고 우리가 딱 주문한 음식 가격만 계산하려고 했다. 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전박대를 받았다. 결국 팁을 못 주고 주인이 문 앞까지 나와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뭐라고 했다. 우리는 이 때 팁을 줘야 되는 것을 잊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놀면 뭐하겠는가. 프라하성의 야경을 보러 갔다. 프라하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길이는 570m, 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비투스대성당·성조지바실리카·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 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십자가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사진 한 컷에 성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며, 빛을 받은 성의 모습은 눈으로 밖에 담을 수 없다. 프라하는 왜 야경의 도시인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게 했다.

 

2014년 1월 6일. 아침에 프라하 성 관광이 체코의 마지막 관광이다. 성 입구에 어제는 밤이 늦어서 볼 수 없었던 호위병을 볼 수 있었다. 절대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세로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어서 내가 직접 옆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프라하 성은 아무리 봐도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에 놀라게 된다. 왼쪽 사진이 성의 정면부이고, 오른쪽 사진이 성의 옆에서 찍은 사진이다.(위의 사진은 정확히 말하면 프라하 성의 성비투스대성당이다.)

 

성비투스대성당 내부와 뒷모습이다. 천장 높이는 33m이고,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다른 성당보다 더욱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정말 다양한 건축형식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아쉽지만 우리는 바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야 되기 때문에 수박 겉 햝기식으로 보고 넘어갔다.

성비투스대성당을 나오고 바로 뒤에 있는 성이지르성당으로 갔다.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잘 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라고 한다. 현재는 미술관 및 콘서트 홀로 이용된다. 원래 유명한 관광지인 황금소로도 보려고 했지만 공금도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해서 바로 차를 주차한 곳으로 갔다.

 

차로 가는 길에 길에서 츄러스와 비슷한 것을 팔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코루나를 다 쓰기 위해 하나 사먹었다. 만드는 과정은 오른쪽 사진과 같이 돌아가는 원형 쇠 통에 반죽을 말아 끼고 굽는 것이다. 다 구워지면 설탕을 뭍이면 끝. 바삭하고 맛있었다.

 

 

 

프라하에서 모든 관광을 마치고 차를 주차한 곳에 갔는데 왼쪽 사진과 같이 자동차 왼쪽 앞바퀴에 체인이 걸려있었다. 진짜 불법주차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체코어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이 주차하면 안 되는 공간인지 몰랐다. 시간상으로는 2박 3일을 주차해서 벌금이 꽤 많이 나올 줄 알았다. 우선 종이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으니까 진짜 경찰이 경찰차를 타고 등장했다.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을 제시했다. 경찰이 뭘 적어가더니 700코루나(당시 약 3만 5천원)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아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했다. 보통 숙박할 때 하루 주차비를 10유로씩 해서 2박 3일을 하면 보통 25유로(당시 약 3만 5천원)를 지출하게 된다. 우리는 주차비를 색다르게 지불했다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전에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12시 30분에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이렇게 하여 2박3일의 체코 관광이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