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본 여행기는 여행에 초점을 맞춘 글로, 반말로 서술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2014년 1월 6일. 체코 프라하에서 진정한 불법 주차 범칙금을 지불하고 12시 30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국가들 중에서 조용하고 치안이 좋은 편이며, 그만큼 경찰들의 단속도 심하고, 부정적으로는 깐깐한 나라라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별도의 도로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고 사진과 같은 비넷을 구입해서 차에 붙이고 다녀야 한다. 비넷은 사용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다. 10일, 2개월, 1년짜리가 있다. 아래1~11이 숫자는 달을 뜻하고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이어지는 숫자는 일을 뜻한다. 우리는 1월 6일에 샀기 때문에 각각에 해당하는 곳에 펀칭을 해주었다.

휴게소에서 비넷을 샀는데 마침 우리 옆에 오스트리아 경찰차가 있었다. 경찰차에서 경찰 두 명이 내리더니 우리가 의심스러웠는지 비넷을 샀는지 확인하고, 이것도 모자라서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과 차 내부의 짐까지 다 확인을 했다. 우리가 어려보이고 차 트렁크에 짐은 한가득 있어서 위험한 인물로 의심을 한 것 같다. 아무튼 무사히 다 확인을 받고 비엔나로 향했다.

 

호스텔에 체크인 하고 밖에 나와서 오스트리아의 명물인 자허토르테를 먹으러 자허호텔에 갔다. 자허토르테는 달달한 초코 케이크로, 커피와 함께 먹으면 입 안에서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 케이크는 1832년 오스트리아 외교관 궁정 주방에서 당시 16살이던 ‘프란츠 자허’가 당시 귀족이었던 메테르니히를 위해 만들었던 것부터 시작되었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메테르니히가 중요한 손님에게 대접한 디저트를 직속요리사에게 부탁하였으나, 요리사가 몸이 좋지 않아 그의 아들이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1876년에 자허의 아들 에두아르트가 빈 시내에 호텔이름을 ‘자허’로 오픈하고 호텔에서 자허토르테를 판매했다. 180년 동안 내려오는 레시피의 비밀이 정말 궁금했다. 먹으면 그냥 케이크와는 다른 부드러움이 있으며, 끝 맛에 살구맛이 느껴지며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케이크에 휘핑크림을 같이 먹으면 입 안에서 더욱 부드럽게 케이크가 녹으며 커피와 함께 먹으면 최고의 궁합이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3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허토르테를 맛보았다. 가격은 약 5유로 정도로 비싸지만 오스트리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 오스트리아는 자허토르테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어서 매 년 12월 5일을 자허토르테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1월 7일. 오스트리아의 국회의사당을 보러 갔다. 이 건물이 나름 도심에 있는데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없어서 조용했다. 알고 보니 이것이 비엔나에서 느낄 수 있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중세의 느낌이 약하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고 여유가 있는 도시였다. 국회의사당 건물은 1873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본보기로 완공되었다. 설계자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그리스의 건축 양식에 따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심지어 건물 내부도 그리스식 원주 기둥들을 세움으로써 파르테논 신전의 겉모습처럼 보이게 했다. 건물 바깥의 정중앙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동상을 세웠으며, 지붕 위의 시꺼먼 굴뚝도 그리스 신들의 웅장한 석상으로 가렸다.

 

국회의사당을 보고 빈 시청사에 갔다. 1883년 완성된 시청사인데 구시가에 위치한 구청사를 대신해 신시청사라 부른다. 고딕풍의 아름다운 건물은 네오고딕 건축의 명수인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가 지은 것으로 독일의 시청사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빈을 대표하는 장소로, 대형 트리와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된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국회의사당이랑 시청사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외형만 둘러보고 지나갔다. 우리는 동유럽(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관광을 일명 ‘찍고 투어’식으로 재빠르게 진행했다.

 

비엔나도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는 것 같다. 국회의사당이랑 시청사를 쭉 걸어서 둘러보고 비엔나 대학도 걸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빈대학은 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전통적으로 합스부르크 왕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보수주의적 학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365년 3월 12일 합스부르크 왕가 루돌프 4세가 형제들과 프라하 대학에 대항하여 독일 문화권 제2의 대학으로서 빈에 설립하였다. 전 세계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교이며, 중앙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당시에는 법학, 의학, 문학의 세 개 학부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 캠퍼스는 따로 정해지지 않고 빈 전체 60여 군데에 흩어져 있다. 빈대학의 졸업생 또는 교수였던 사람은 에르빈 슈뢰딩거,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이 있다.

 

비엔나 대학 내부 사진으로서 오래된 역사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가운데 사진은 근래에 들어서 지어진 것 같은데 건물 중정에 있는 외부 계단이다. 코어전체를 유리로 해서 대학의 중정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대학 본래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기존 대학 건물과 ‘문맥(context)’이 맞지 않고 이질감이 느껴졌다.

대학교에 들렀으니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시간도 점심시간 때였다. 중국식 뷔페 요리로서 가격은 7.5유로(당시 약 10,800원)로 비쌌지만 기념으로 먹어보았다. 유럽에서 중국식 뷔페라니... 그래도 긴 여행에서는 많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우선 배터지게 먹고 보았다.

 

식사를 배불리 하고 또 걸어서 호프부르크 왕궁에 갔다. 100여 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1220년쯤에 건축되었다. 이후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들이 거주하였고,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며 승마학교, 국제회의장,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있다고 한다. 왕궁은 크게 16~18세기에 지어진 구왕궁과 19~20세기에 지어진 신왕궁으로 나누어진다. 신왕궁은 무기·악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구왕궁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소년합창단이 일요예배 찬양을 하는 왕궁예배당을 비롯해 왕궁보물창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승마학교인 스페인 승마학교 등이 있다. 전 황제가 사용하던 방은 다음 황제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불문율 때문에 무려 2,600개나 되는 많은 방이 있다고 한다.

 

왕궁을 둘러보고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 갔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밀라노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로 불린다. 1869년 완성되어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를 초연했고, 1897년부터 10년 동안 구스타프 말러가 총감독으로 있으면서 일류의 오페라하우스가 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카라얀, 카를 뵘 등 세계적인 지휘지가 총감독을 맡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정면은 장식이 많은 네오르네상스 양식이며, 공연이 있는 저녁에는 샹들리에가 불을 밝혀진다고 한다. 건물이 너무 크고 카메라가 좋지 못해서 한 컷에 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오페라를 입석으로라도 못 본 것이 아쉽다.

벨기에에서도 시청사에 건축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오페라 하우스 건물에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1869년에 이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생각하지 못한 결함이 발견되었다. 건축 도중에 링 도로를 포장하면서 길바닥의 높이가 1m 정도 높아졌다. 그래서 건물 1층은 낮아 보이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건물을 '가라앉은 상자'라고 흉을 보았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이런 사태에 대해 설계자 뉠은 낙담하고 1868년에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한다.

 

다시 걸어서 케른트너 거리로 이동했다. 국립 오페라 극장부터 슈테판 성당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보행자 전용 도로이며 길이가 600m에 이른다. 1974년 오스트리아 ‘Garinthia주’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고,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거리로 꼽힌다. 도로 양쪽에는 기념품가게와 액세서리점, 패션, 레스토랑, 카페 등 다양한 상업시설들이 늘어서 있다. 이 거리도 번화가 인데 사람이 많지 않고 조용하고 한적한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비엔나는 바쁜 생활 속에서 한 번쯤 쉬어갈 여유를 줄 수 있는 도시인 것 같다.

 

오스트리아하면 다양한 공예품이 유명한데 그 중 게른트너 거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와로브스키 구경을 했다. 스와로브스키는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하던 작은 가게를 물려받고 크리스탈을 가공하는 기계를 발명해서 특허를 내고, 크리스탈 작은 조각을 붙일 수 있는 투명한 접착제를 만들어서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리스탈 양이 2층에 걸쳐 전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관광객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확실히 한국보다는 더 싸다고 한다.

 

이로서 오늘의 관광을 모두 마치고 또 자허토르테를 맛보고 저녁을 먹으러 ‘balm brau’에 갔다. 양조장과 레스토랑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식당이었다. 분위기도 아늑하고 조용하고 식사하기 좋은 곳이다. 우리는 꼴레뇨와 립, 샐러드를 시키고 맥주도 마셨다. 꼴레뇨는 역시 체코의 맛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맛있었다. 그리고 립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큼직한 크기였다. 맛있게 먹고 이번엔 팁까지 확실히 주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식사 때 마신 맥주가 부족해서 우리끼리 소소한 파티를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맥주인 에델바이스(edelweiss)와 다양한 맥주를 사서 마셨다. 에델바이스 맥주는 물 좋은 알프스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알프스 허브를 넣어 만든 밀맥주라고 한다. 사실 나는 맥주 맛을 잘 구분 못하기 때문에 그냥 시원한 맛으로 마셨다.

 

2014년 1월 8일. 아침을 먹고 유럽최대아울렛으로 유명한 판도르프 아울렛에 갔다. 일요일은 열지 않으니 주의해서 일정을 짜야한다.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별 특징이나 쇼핑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서계 어느 유명한 아울렛을 가든 한국인 배려를 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안내에 대한 문구도 꼭 마지막에 한국말로 되어있다. 심지어 이 판도르프 아울렛 홈페이지는 한국말 버전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다른 아울렛에서 볼 수 없는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엄청 큰 성인용품점이 있었다. 매장이 너무 크고 안에 손님들도 당당히 들어가기 때문에, 이쪽으로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은 한번쯤 가보길 추천한다.

17까지 아울렛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앞으로 공금을 계산하면서 친구들과 다음 일정을 계획했다. 공금이 생각보다 부족하고, 친구들도 앞서 영국에서 잠시 들렀던 바이스터 빌리지 아울렛(여행기에 쓰진 않았다)과 오스트리아 판도르프 아울렛을 거치면서 많은 돈을 소비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갈 스위스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스위스를 취소하고 대신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를 추가했다. 우리가 유럽 여행을 급하게 계획한 것이라 도중에 일정이 꽤 크게 수정될 줄을 알았지만 이렇게 국가가 바뀔 줄을 몰랐다. 수정된 일정은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 가기 전에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를 들러 관광을 하는 것이다. 헝가리는 단순히 유럽 최대의 야외 온천을 가서 여행으로 지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크로아티아는 이 당시에 유행했던 ‘꽃보다 누나’에서 갔던 곳을 가기 위해 즉흥적으로 추가되었다. 이렇게 하여 바로 이 다음날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2박 3일의 오스트리아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