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청수사 무대에서 교토를 내려다보다.

 11번째 이야기는 교토의 상징인 청수사 (키요미즈데라, 淸水寺)의 이야기 입니다. 이번 편은 정말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네요. 아마 이번 기획연재 시리즈에서 가장 길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이렇게 쓰고나니 내용이 부실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네요...

 오늘은 교토의 상징인 청수사를 통해 청수사, 사하촌, 일본의 역사와 종교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해볼까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최대한 잘 소개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키요미즈데라는 교토의 자랑인, 교토를 상징하는 건축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찰이며, 오래된 역사를 자랑합니다. 1994년 고도 교토의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지난편에서 소개해드린 금각사, 은각사등과 함께 총 17곳의 신사, 절, 성이 유네스코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청수사의 지도입니다. 위 지도의 적힌 번호 순으로 건물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사찰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경내를 소개해드리기 위해 1번부터 20번까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찍어온 사진이 없거나 과도하게 흔들린 사진의 경우, 청수사 공식사이트에 공개된 사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청수사에 도착해 처음 보이는 1번 건물은 마주(우마도메 馬駐) 즉, 말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무사계급이나 귀족들이 청수사를 찾았을 때 말을 묶어두던 곳으로 현재로치면 주차장 같은 곳입니다.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있습니다.



 2번은 청수사의 정문인 인왕문 (니오몬 仁王門)입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화려함이 큰 특징입니다. 소실되었다가 무로마치 막부 후기 오닌의 난 이후 재건되었습니다. 인왕문은 불교 건축에서 입구에 세워지는 정문격의 건물입니다. 인왕은 불교에서 사찰과 불탑을 수호하는 수문신장으로, 불법 외호선신의 하나입니다. 불교에서는 금강역사, 이왕, 이천왕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인왕문은 이 인왕을 모셔놓은 건축물로 악한것을 쫓아내고 사찰 내부를 지키는 경계의 역할을 합니다.

 인왕문의 강렬한 붉은 색이 인상적입니다. 붉은 색은 불교에서 정진을 의미합니다. 부처의 피를 상징하는 색으로 대자대비한 법을 닦으며, 쉬지않고 수행에 집중하라 하여 정진의 의미를 담고있다고 합니다.

 청수사의 특징 중 하나로 사찰 경내의 수많은 건물들이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시대에 거쳐 건설되었다는 점이 있는데, 인왕문은 무로마치시대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3칸형식으로 되어있으며, 15세기 말 재건되어 2003년 수리를 완료했습니다.



 3번은 서문 (사이몬) 입니다. 서문은 에도 초기에 재건되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에 붉은색의 단청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모모야마시대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서문은 한국 사찰 산문의 천왕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 부처를 지키는 사천왕 중 동방의 지국천왕과 남방의 증장천왕을 모시고 있는 건물입니다. 인왕문과 마찬가지로 악한자들을 쫓아내고, 죄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립니다. (참고로 사천왕은 북방의 다문천왕, 서방의 광목천왕이 있으며, 주로 천왕문에서는 오른쪽벽에 지국천과 다문천이 왼쪽벽에는 증장천과 광목천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도 사진이 애매하게 나왔네요. 뒤쪽의 삼층탑이 같이 찍혀 있어서 헷갈리실 텐데, 제일 위쪽 지붕은 뒤편 삼층탑입니다.)




 4번은 청수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삼층탑입니다. 헤이안 초기 847년 창건하여 에도시대 초기에 재건되었습니다. 일본식 불교 건축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헤이안 시대에 지어졌으며, 국가 중요문화재로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특히 청수사 삼층탑의 의의는 규모에 있습니다. 높이 31m로 일본 최대의 목조탑입니다. 1층에는 밀교의 본존인 대일여래, 마하비로자나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내부로는 들어가 볼 수 없지만, 내부에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여덟면에 밀교 8대승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매우 웅장한 목조건축으로 기둥과 천정은 용과 화려한 색채로 장식되어 있어 궁장함과 화려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인왕문과 서문, 삼층탑을 통해 느끼셨을 텐데, 일본의 불교건축은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합니다.


 5번은 종루입니다. 중요문화재로 에도 초기에 재건되었습니다. 무로마치시대 말 오닌의 난 이후 청수사를 재건한 고승에 의해 주조, 기부된 범종이 걸려있습니다.


 6번은 수자관음당으로 아기 관음을 모신 곳입니다.


 7번은 수구당입니다. 에도 중기 1718년 재건되었고 2008년 해체수리를 했습니다. 수구당은 어떤 소원을 빌어도 다 이루어주는 어머니부처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소원 중에서도 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신불이 모셔져있어 효과가 영험하다고 합니다. 수구당을 동해 태내돌기라는 것에 참여할 수 있는데, 작은 동굴같은 것으로, 수구당의 모티브가 모체인만큼 동굴을 태내 즉 어머니의 배속이라고 합니다. 수구당 지하를 통해 내려갈 수 있으며, 대수구보살의 태내라고 합니다. 어두운 태내를 벽에 걸려있는 염주를 따라 돌면 대수구보살을 상징하는 범자가 생겨진 수구돌앞에서 기도하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8번은 경당입니다. 에도 초기에 재건된 건물로 석가 삼존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1633년에 재건되었고 2000년에 해체 수리를 완료했습니다. 불교문화가 꽃피웠던 헤이안 시대 중기에는 대장경을 소장하여 전국에서 학문을 중시하던 승려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강당으로 번성했으며, 현재 대장경의 소재는 불분명합니다. 당내에는 석가 삼존상을 모시고 있으며, 천장에는 에도 시대의 화가 오카무라의 용 수묵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9번은 개산당 혹은 타무라당으로, 청수사 창건에 큰 공을 세운 타무라를 기리는 사당입니다. 



 10번은 굉문 (토도로키 몬)입니다. 청수사 본당 중문으로, 나라 도다이지의 회전문을 모방했습니다. 중요문화재로 에도 초기에 재건되었습니다. 굉문의 좌우 양쪽에는 지국천왕과 광목천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굉문에 앞에는 청동 용 동상이 있으며 용의 입에서 맑은 물이 쏟아져나옵니다.


 11번은 조창당 (아사쿠라도 朝倉堂)입니다. 1510년 창건된 건물로 창건 당시에는 위에 언급된 다른 건물들 처럼 붉은빛이 화려하게 채색된 건물이었지만, 1633년에 재건되고 2013년에 해체 수리되면서 전면 복구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중국양식으로 천수관음 삼존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아사쿠라당 동쪽 복도를 지나면 왼쪽에 불족석이 있는데, 부처의 발이 새겨진 돌입니다. 수백년 전부터 이 돌을 만지고 자신의 아픈 부위를 만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돌을 만졌는데, 그 때문에 현재는 과거에 있던 많은 무늬들이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12번은 본당으로 진입하기 위한 회랑입니다. 사진이 매우 흔들린 점 죄송합니다. 토도로키 문에서 본당까지를 이어주는 회랑으로 풍경이 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아름답게 풍경이 울립니다. 회랑의 오른쪽이 확 트여있어서 시원하게 바깥 경관을 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소리때문에 정말 좋은 공간이었습니다만, 관광객 여러분들이 대부분 여기까지 오면 어서 본당으로 가고싶어서 뛰어가버리셔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마당을 찾아주신 손님 여러분들은 나중에 청수사를 찾게 되시면 잠시 여기서 풍경소리에 젖어 확 트인 경관을 바라보는건 어떨까요?



 13번은 청수사의 중심인 본당입니다. 일본의 국보이자, 청수사의 상징이며, 도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불당입니다. 1633년 재건되었으며, 정면 36m 측면 30m 무대높이 18m로 매우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열주로 외진, 내진, 내내진으로 나누어져있고, 일반 관람객은 외진에서 청수사를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우아한 곡선의 일본식 우진각 지붕이 특징으로, 삼나무 줄기와 껍질을 켜켜이 쌓고 아랫부분은 목재로 감싸서 만든 것으로 일본 건축에서 보이는 양식입니다. 청수사의 삼나무 껍질 지붕은 10년에 한번씩 지붕갈이를 한다고 합니다.

 청수사의 본당 무대는 139개의 기둥을 못을 박지않고 만든 난간입니다. 사실, 못을 박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충격적인 인상을 주어 많은 외국인들이 찾지만, 목조건축에 원래 못을 쓰지 않는 동양권에서는 서양인들보다는 충격이 적습니다. 하지만, 같은 동양인이 보기에도 청수사의 규모는 충분히 놀랍고 인정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속담으로 청수사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하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뛰어내릴 각오로 하면 세상에 못 이룰일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이런 속담 때문에 청수사 무대에서 뛰어내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235명이 소원을 빌면서 뛰어내리는 도전을 했고 대부분이 부상, 2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냥 눈으로만 봅시다 마당 가족여러분 ㅎㅎ)

 이 본당 무대를 비롯해 모든 청수사의 건물들은 승려들이 직접 목재를 옮겨 지은 절입니다. 당시에는 이 먼 길을 목재를 짊어지고 옮기면서 정성을 다해 절을 짓는 것 자체가 수행이라는 생각때문에 승려들이 정성을 다해 지었다고 합니다.


 14번 청수사 서쪽 지장당입니다. 지장보살을 모신 작은 건물로 잠시 지장보살께 예불을 드리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서쪽 지장당에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로 석가당 (샤카도)입니다. 에도 초기에 재건되었으며,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간소한 구조로 되어있어 내진에 석가여래와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선녀 천정화가 그려져있어서 수수한 외관과 달리 내부 장식은 화려합니다. 노송나무껍질로 지붕을 만든 것이 특징이며, 옻칠을 해서 검은 빛이 도는 어두운 나무무늬가 특징입니다. 1972년 호우로 붕괴되어 3년 후에 재건되었습니다.


석가당의 바로 뒤쪽에는 백체지장당 (햐쿠타이지조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와 달은 지장을 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있는 사당입니다. 평소엔 조용하지만, 여름에 지장보살을 위한 예불을 드릴때는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고 합니다.



 17번째는 아미타불을 모신 아미타당입니다. 붉은 빛 단청과 황금색 장식이 화려한 건물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정토종의 법연대사 (호넨 대사)가 일본에서 처음 불도를 닦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18번은 백체지장당 뒤 쪽에 위치한 작은 불상입니다. 이름은 젖은 손의 관음(濡れ手観音) 입니다. 작은 불상으로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연꽃이 핀 작은 우물의 물을 국자로 길어서 젖은 손의 관음상의 어깨에 부으면 심신이 정화되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당에서 복도로 이어진 건물로,옥원 (오쿠노 인)이라고 합니다. 위에 올린 본당의 청수사 무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오쿠노인입니다. 본당무대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으로, 지붕도 본당과 같은 삼나무 껍질의 우진각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교토 시내를 면하고 있어, 청수사전체와 본당무대, 교토시내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뛰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오쿠노 인에는 천수관음, 지장보살, 비사문천, 풍신과 뇌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20청수사의 또다른 상징인 오토와 폭포 (오토와노타키)입니다. 청수사라는 이름의 기원으로 청수사의 맑은 물을 뜻하는 청수는 바로 이 오토와폭포의 맑은 물을 듯합니다. 세줄기로 나누어 떨어지는 낙수가 특징이며 이 낙수는 왼쪽부터 학문, 연애, 장수를 기원하는 물입니다. 이 중에서 하나만 골라서 마시는 것이 예의로 여러개를 마시면 어느소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전해져오는데, 이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청수사의 핵심이 되는 경내 내부의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청수사의 설명외에 일본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와 사하촌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위 사진은 지슈진자 (지주신사)의 사진입니다. 지슈신사는 청수사입구 바로옆에 위치한 신사입니다. 사랑을 이루어주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청수사를 수호하는 신사 역할을 했으며, 메이지시대의 신불분리정책 이전에는 청수사에 포함된 시설이었습니다. 현재든 두 시설이 분리되어 있지만, 입구는 같이 있어 역시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지슈신사는 일본신화의 최고의 신인 스사노오의 후손인 제신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 (이하 오오쿠니)를 모시는 신사로,  오오쿠니는 연분을 맺어주는 신입니다. 때문에 지슈신사는 별명으로 인연의 신사, 사랑의 신사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수학여행온 여중, 여고생들의 최고 인기 코스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사진에 보시면 사랑을 점치는 돌이 있는데, 이 돌이 10m간격으로 두개가 있습니다. 첫번째 돌에서 눈을 감고 똑바로 걸어서 두번째 돌까지 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언제나 눈을 감고 돌 사이를 걷는 소녀들로 시끌벅적한 곳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일본인의 종교관입니다. 분명 불교와 신도는 다른 종교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와 천주교처럼 뿌리가 같은 종교도 아닙니다. 불교는 대륙을 통해 건너온 종교이며, 신도는 일본 전통의 민간 정령신앙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자연재해와 신도의 영향으로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고, 종교에 대한 개방이 큰 편입니다. 종교간의 분쟁이 매우 적고,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국가입니다. 때문에 이전 이야기에서 신사와 절의 차이를 설명했듯, 청수사에서도 청수사와 지슈신사가 같이 있는 독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비유하기엔 조금 맞지 않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절이랑 교회가 같이 있는 모습이나 교회안에 성당이 있는 모습등으로 억지로 비유할 수 있는데, 일본인의 종교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독특하고 개방적인지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청수사 뿐만 아니라 유명하거나 규모가 큰 절이나 신사를 가면 내부에 반대로 신사가 있거나 절이 있는 경우가 자주 보입니다. 이는 불교와 신도 모두 기본적인 일본인의 문화에 녹아있는 종교로 인정하고 불교와 신도의 영역이 다름을 인정함으로 서로가 담당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두 종교건축이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해 볼 주제는 사하촌입니다.사하촌은 조관희의 교토 천 년의 시간을 걷다라는 책에서 언급된 표현으로 절이나 신사 주변에 형성된 기념품상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일본여행을 다녀와보신 분들이라면 교토의 절이나 신사주변에 수많은 기념품가게나 전통 공방, 찻집이나 전통 일식가게등으로 길이 형성된 것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런 가게들로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전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국적 기분이 들고는 합니다.

 청수사에도 이러한 길들이 몇개 있습니다. 청수사 주변에는 키요미즈자카, 니넨자카, 산넨자카라는 언덕길이 있습니다. 이 언덕길에 자연스레 기념품점들과 전통가게들이 위치하며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키요미즈자카, 니넨자카, 산넨자카는 대표적인 사하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옥들과 판매되는 전통적인 상품들은 그 나라의 정체성인 일본스러움을 선물하며, 관광객들은 그 일본스러움에 매료되어 물건을 구입하고 상인들은 생계를 이어갑니다.

 사하촌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생활은 건축으로 나타나며, 건축들은 모여서 도시를 형성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는 계획적으로 생성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생성되기도 합니다. 즉 이러한 사하촌은 계획되어지기도 하겠지만, 전통적인 건축물인 신사와 절이 있기에 주민들이 자연스레 전통을 이어가고 그 전통을 판매하며 살아가고 다시 그런 주민들의 삶이 건축으로 표현되고 모여서 도시의 정체성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건축물의 특성상 외국인들이 많이 찾으며, 그 외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그 나라가 가지는 그 나라의 이미지 즉 정체성입니다. 

 흔히들 건축에서 땅을 읽고, 그 땅의 의미를 건축으로 표현하라고 합니다. 사찰과 신사는 자연스레 전통을 지키고,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땅이며,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전통을 지키고 관광객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려 합니다. 즉, 이러한 사하촌은 역사-인간-건축-도시 그리고 상업적 목적과 관광적 자원으로서의 이해관계에 의해 탄생 된 것입니다,

 단순한 상점가가 있는 관광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건축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선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동시에 우리나라도 더욱 전통을 보존하고 가장 한국스러운 것들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주요 관광지나 중요 문화재는 잘 보존되고 있고 상업적으로도 관광적으로도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사소한 것이라도 전통을 소중히 지키고 활용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하촌의 이야기를 끝으로 이번 청수사편을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행을 가면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해보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건축학과 학생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그 땅의 의미를 건축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 느끼고 배워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관광이 아닌, 길 하나를 걷더라도 그 곳의 건축, 사람들의 삶, 디자인, 역사, 그 곳의 공간감을 포함한 여러가지 느낌들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