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오사카 주택박물관과 신세카이를 통해 보는 오사카의 역사

 간사이 건축 여행기 네번째 이야기는 오사카 주택박물관과 신세카이 츠텐가쿠를 통해서 본 오사카라는 도시의 역사와 오사카의 건축적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사카 시립 주택박물관과 츠텐카쿠는 둘 다 내부에 오사카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책에서 각 나라의 대도시들의 역사에 대한 글을 읽어보곤 했는데, 여행을 와서 박물관을 들려 직접 모형이나 사료를 보니 더욱 오래 기억에 남네요.



 오사카 시립 주택박물관은 오사카 시립 주택 정보센터에 위치하고 있는 체험형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내부를 오사카의 옛 길거리를 재현해놓았고, 일본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입어볼 수 있는 체험이 가능해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일본 현지인들은 잘 찾지 않지만,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참 많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오사카 주택박물관에서 유카타를 입고 거리를 걸었다는 체험기나 사진은 다른 블로그에도 많이 찾을 수 있으니 저는 오직 박물관의 내용물인 오사카라는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주택박물관은 에도시대의 상업도시인 오사카의 상점거리를 재현해놓은 곳입니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한 시점부터 1867년 15대 쇼군 요시노부까지의 시대를 에도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와 시기가 비슷하니, 조선시대 일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에도시대는 봉건주의 사회로, 지방 영주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성곽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조카마치 (성곽을 중심으로 한 마을)가 형성되었습니다.

 조카마치는 시가지 구획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주민들에 의해 자유롭게 형성되었습니다. 각 지방의 영주였던 높은 계급의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지리적으로 방어가 요인한 곳에 성을 건설하고, 성을 따라 조카마치를 형성했습니다. 하나의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도성이 중심이 되었지만, 일본은 봉건사회와 전국시대가 계속되던 나라로, 각 지방마다 성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보다는 도심의 형태가 다양한 편입니다. 강가에 위치한 곳에 자리잡은 영주라면 강촌에 도심이 발달하고, 바닷가에 자리잡은 영주의 도시는 어촌이 발달했으며, 산에 성을 짓고 자리잡은 영주의 도시는 산촌이 발달한 것이죠.

 성곽에서 가장 안쪽은 사무라이들의 가문이 위치했습니다. 일본역사에서는 무인계급인 사무라이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던 귀족계급이었던 만큼 도심에 가장 안전하고 중심이 되는 곳은 사무라이 가문의 땅이었죠. 사무라이계급이 성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면 그 다음으로 상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유럽국가들의 장인들이 길드를 만들어 활동했듯, 일본도 상인 계층이 발달해, 상인들이 모여 상가를 형성하였고, 이 상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발전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이듯, 이 당시 건물들의 특징은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 길게 이어져 크고 긴 기와지붕을 서로 이어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비슷한 분야의 상가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의복관련 상업시설이 모인 고후쿠마치, 목공관련 상업시설이 모인 다이쿠마치, 어물, 식료품 상가들이 모인 사카나마치등이 위치했습니다. 이 상가들의 명칭은 지금까지 이어져 그대로 마을의 이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을 여행하시다가 이런 이름이 보이시면, 아 과거에 이곳에서 이런 상업시설들이 번영했던 곳이구나 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길게 이어진 기와지붕 상가들 사이로 화재감시대가 보입니다.)

 기와지붕으로 공유한 상가건물들 사이에 간이탑들을 설치했습니다. 이 간이탑들은 화재감시대입니다. 섬나라이며, 지진등의 자연재해가 가장 큰 위험요소였던 일본은 목조건축이 지속적으로 발달했는데, 이는 화재에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또한 공간효율등을 위해 옛부터 집들을 효율적으로 짓고 붙여서 짓던 일본 건축의 특징때문에 화재는 매우 큰 위협이었습니다. 따라서 상인들은 간이탑을 만들고 서로 교대로 화재를 감시하며 화재에 대처했습니다.

 과거의 오사카의 도시를 살펴보면 특이한 상가가 많이 보입니다. 중세시대였음에도 일반적인 의복,목공,어물상가 외에도 집회소, 잡화상, 포목점, 약방등이 있었으며, 목욕탕, 인형가게, 서점, 미술도구점등도 있었습니다. 목욕과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과거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업건축 외에 주거건축도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연립주택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목구조로 낮은 연립주택들이 도심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주택들이 후에 근대를 거쳐 기술적문제를 보완하여 현대식 연립주택으로 진화했습니다.

 에도시대의 상가건물과 주거건물은 대부분 한 건물이었습니다. 길에 면한 곳에 평상을 두고 물건을 전시했으며, 길에 면한 쪽을 가게로 사용했고, 내부로 들어가면 단을 두어 바닥과 실내공간을 분리하여 주거와 상업의 공간을 분리했습니다. 단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무릎정도였습니다. 일본의 주거를 살펴보면 지금도 공간활용이 뛰어나 로프트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당시 상업부분의 위쪽에는 선반을 두어 중요한 물건을 모두 올려두었고, 간단한 소도구들을 배치해 장사를 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주거공간으로 들어가면 입구주변에 부뚜막과 부엌살림들이 위치해있고, 바닥에는 습기를 제거하기위해 일본 전통 바닥재인 다다미가 깔려있습니다. 일본의 방은 다다미의 갯수로 방의 크기를 결정하는데, 상가건물에 포함된 주거공간은 장사를 하면서 잠시 쉬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의 다다미 3조 짜리의 작은 크기로 형성되었습니다.


 이상이 주택박물관의 주 체험공간인 에도상가거리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주택박물관과 신세카이 츠텐카쿠에 전시된 에도시대 디오라마를 통해 과거 오사카의 모습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아래 모형들은 에도시대 이후 메이지시대, 다이쇼시대, 쇼와시대를 재현한 것입니다. 일본의 연호는 에도시대이후 통치하는 일왕이 바뀔때마다 연호를 정하고 있습니다. 메이지, 다이쇼, 쇼와시대는 일본의 근현대시대로, 모형을 통해 동아시아 일본의 근현대 격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카와구치 거류지)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외국 문물을 받았는데, 위 모형인 카와구치 거류지는 1868년 형성된 카와구치 서양신 주택 집단 구역입니다. 외국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시키기에 능한 일본 문화 때문인지, 서양식 건축이지만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창의 형태부터 지붕의 형태 및 기둥의 형태까지 근대 서양건축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카와구치 거류지는 이후 계속 발전하여 근세 오사카의 시가지로 발전합니다.


(키타센바)

 1932년경 형성된 당대 오사카의 최고 번화가이던 키타신바의 모형입니다. 근대 발전된 도시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현대식 콘크리트건물들이 들어섰으며, 고층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높게 선 전신주와 도로 가운데를 다니는 트램도 보여, 체계적으로 계획, 발전된 오사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카이지 연립주택가)

 신카이지 연립주택가는 1935년에 형성된 주택단지로, 에도시대때부터 조금씩 시작되었던 연립주택과 메이지시대에 받아들여진 근대 서양건축양식이 합해져 형성된 근대 연립주택가입니다. 메이지유신을 겪으며 일본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근대로 들어섭니다. 이후 체계적인 도시구획을 통해 도시화를 이루었는데,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신카이지 연립주택가입니다. 체계적 도시계획에 의하여 형성되어 근대적 오사카 오사카 주택가의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위 모형을 보시면 건물의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앞마당을 두고 근대식 울타리로 두었으며, 외부를 보면 근대 서양 주거건축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공간구성은 전통 일본식 주거 평면과 같습니다. 뒷마당이 좁지만 마당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는 전통 가옥 양식인 마치야 때부터 존재하던 양식입니다. (마치야에 대해서는 한옥, 사합원과 함게 다음기회에 마당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라보리토리 상점가)

 1938년 형성된 카라보리토리 상점가 입니다. 근대식으로 형성된 상점가로 위에서 보신 에도시대의 상점가와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긴 지붕을 공유하던 목조건축 상점가에서 서양식 건축양식을 도입한 다층구조의 독립건물들로 변화한 것입니다. 그대신 도로가 깔끔하고 넓게 정리되어 많은 사람들이 더욱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게 변화하였습니다.


(시로키타 버스 주택단지 ※시로키타 버스 주택단지 모형 사진을 못찍어서 구글에서 구한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시로키타 버스주택단지는 전쟁 직후에 형성된 단지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매우 큰 잘못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되어 주민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은 안타깝네요.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되어 살 곳이 없자, 오사카 주민들이 버스를 주택으로 개조하여 임시로 주거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것이 시로키타 버스 주택단지입니다. 


(후루이치나카 단지)

 후루이치나카 단지는 1955년에 형성된 단지로 전쟁 직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오사카를 단지계획을 통해 새롭게 부활시킨 것입니다. 도시계획을 통해 전쟁의 아픔은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 진행되었습니다. 후루이치나카 단지에서도 보이듯 전쟁 직후 새롭게 계획하에 세워진 오사카는 현대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마치 현대의 아파트 단지 같습니다.


 이상 6개의 디오라마를 봤습니다. 이 6곳은 오사카의 근현대를 상징하는 오사카 6경입니다. 오사카 6경의 형성 시기를 시대순으로 적으면 카와구치 거류지 - 키타센바 - 신카이지 연립주택가 - 카라보리토리 상점가 - 시로키타 버스 주택단지 - 후루이치나카 주거단지가 되겠네요.





 마지막으로 보실 것은 오사카 루나파크입니다. 메이지시대에 들어 일본은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합니다. 1903년에는 오사카에서 제 5회 내국 권업 박람회를 개최합니다. 당시 박람회장이 있던 곳이 바로 현재 오사카 신세카이와 텐노지 지역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저 탑이 현재 신세카이에 있는 츠텐카쿠의 원형이죠. 박람회 이후 오사카시는 텐노지에 유원지르 형성하는데, 그 유원지가 바로 루나파크입니다. 루나파크에는 루나파크를 상징하는 초대 츠텐카쿠가 세워졌고, 이 초대 츠텐카쿠는 에펠탑을 모방하여 만든 64m의 철탑이었습니다. 1912년에 지어졌으며, 세계대전때 소실된 이후 1956년에 103m로 새롭게 복원되어 현재의 츠텐카쿠가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오사카 주택박물관과 신세카이 츠텐카쿠에 전시된 모형들을 통해 오사카의 근대모습을 알아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사카 여행에서 주택박물관을 단순하게 유카타를 체험할 수 있는 곳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건축학도 여러분들은 조금만 관심있게 보시면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인 일본의 대도시인 오사카는 근현대를 어떻게 거쳤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오사카에 가실 건축학도 및 여행객 여러분 예쁘게 유카타 체험도 하고 근대 일본의 역사와 건축을 배워보고 오시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