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간판천국 도톰보리를 걷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여행의 시작은 아마도 간사이국제공항이겠지만, 그 중심지는 아마도 도톰보리가 아닐까 합니다. 오사카의 대표 관광지이자 오사카의 중심 난바역과 가까워 호텔들이 모여있고, 식도락의 도시 오사카의 모든 맛집이 모여있어 대부분의 여행객이 이 곳 도톰보리를 베이스캠프 삼아 여행을 즐기곤 합니다. 3번의 간사이여행을 통해 느끼고 배운 살아있는 일본 건축 문화와 역사 이야기, 그 첫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곳 도톰보리에서 시작합니다.


 도톰보리강은 오사카의 남쪽에 위치한 강으로 오사카 특유의 서민적 분위기와 관광지희 활기참이 넘쳐흐르는 곳입니다. 타코야끼를 시작으로 식도락의 성지라는 오사카의 온갖 음식들을 한 곳에서 맛 볼 수 있고, 서민적인 선술집부토 고급 일식집까지 다양해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모두 사랑하는 곳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말하는 헌팅과도 같은 의미의 난파가 이뤄지는 곳으로 유명한 난파다리 에비스스시에는 서로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젊은 남녀와 유흥업소로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한 일명 삐끼라 불리는 홍보 직원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죠. 맛집들과 술집, 그리고 유흥업소까지 가득한 곳이다 보니 도톰보리는 광고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더 빨리 더 화려하게 더 오랫동안 눈에 띄어야 사는 것이죠.


 오늘 이야기하고싶은 것은 바로 이 '간판'입니다. 첫 이야기는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어서 더 쉽고 친근하게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간판이 건축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건물을 사용하는 건물주 혹은 영업주가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옥외광고물로 설치하곤 합니다. 




 오사카의 상징이 될 정도로 유명한 도톰보리의 상징 글리코 제과의 간판인 글리코런너입니다. 이처럼 도톰보리의 간판은 우리의 상식을 깨부숩니다. 화려하고 독특한 간판들로 손님의 눈길을 돌립니다. 화려하고 거대하고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도톰보리의 간판들은 분명 난잡하고 너무 튀어서 눈이 아플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죠.


 그렇다면 간판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간판은 상업건물에 있어 그 건물 정확히는 그 건물을 사용중인 상업시설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건축이라는 학문과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간판은 이름표와 같은 것이죠. 그래서 저는 간판이 건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곳이나 번화가에 가면 눈여겨 간판을 보게되더라구요. 다음 사진을 몇 장 보시죠.




 가보신 분도 있겠지만 유명한 게요리 전문점과 타코야끼 전문점의 간판입니다. 그리고 안가본 사람도 누가봐도 아 저곳이 게요리와 문어요리를 파는 식당이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어떤 간판이 이보다 더 확실하고 재밌게 이 가게의 정체성을 알려줄까요? 간판이 건물과 건물을 이용중인 상업시설에 대한 정체성이라고 했을 때, 도톰보리의 간판들은 조금 개성이 넘쳐서 과할 수 있지만 누구보다 확실히 그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간판은 건물,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간판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기 위해 이제 우리나라의 간판을 생각해봅시다. 거리, 특히 번화가는 다른 가게보다 더 많은 손님을 데려오기 위해 가게마다 저마다 화려한 간판을 내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번화가들의 간판은 2가지에만 집중해있습니다. 더크게 그리고 더 밝게. 다른가게보다 더 큰 간판으로 다른가게의 간판을 가리고 내가 먼저 눈에 들어와야하고, 남들보다 밝은 간판으로 주변에 자신의 가게를 알려야합니다.

 가게마다 살기위해 시작한 이 간판전쟁으로 우리나라의 번화가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간판으로 인한 시각 공해를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며, 서로 더 화려해지기 위해 시작한 간판전쟁은 번화가 전체를 퇴폐적이고 추잡한 분위기로 바꿔버렸습니다. 이에 간판으로 인한 공해를 인정하고 간판규제를 할만큼 간판은 오히려 거리의 미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지게 되었죠.

 간판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건물의 정체성과 홍보를 위해서는 간판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그 과열된 간판 경쟁으로 사람들에게 간판은 거추장스럽고 불쾌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죠. 그렇다면 간판은 정체성을 가진 이름표일까요? 아니면 자기만 살고 거리전체의 질은 떨어뜨리는 거추장스러운 것 일까요?

 도톰보리의 간판들과 우리나라 번화가의 간판. 난잡하고 화려하고 큰 것은 똑같지만 왜 도톰보리의 간판들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고, 왜 우리나라 번화가의 간판들은 시민들에게 시각 공해를 일으킬만큼 혐오받고 있을까요?


 해답을 위해 도톰보리의 간판과 우리나라의 간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해답은 그 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그 거리의 분위기가 간판에 녹아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간판을 넘어 이젠 오사카의 상징이 된 쿠이타오레타로입니다. 간판이 건축물이 할 일인 랜드마크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죠. 간판이 가지는 정체성의 잠재력이 건물의 영역까지 침범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톰보리의 분위기는 외국인이 많이 찾고, 일본적인 그리고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캐릭터, 로봇, 난잡해보일정도의 과장이 간판에 녹아들어 가장 일본스러운, 가장 도톰보리스러운 간판이 현재 도톰보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 거리의 간판들입니다. 건물은 간판규제를 피하기 위해 건물의 파사드를 덮어버리는 짓을 통해 건물의 정체성과 건축가의 의도를 짓밟고 있고, 크고 밝기만한 간판들은 주변 상가와의 상생은 포기한채 자신만이 살겠다며 발버둥치며 거리 전체의 미적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동의 간판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사동의 분위기보다 간판을 더 자주보게 되는데요, 인사동의 간판은 정말로 아름답고 건물과 상업시설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일본인들의 특징과 도톰보리의 분위기가 잘 녹아있기 때문에 도톰보리의 간판들이 난잡하고 화려하지만 사랑받는다고 말했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겐 한글의 아름다움과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이런 분위기의 간판이 정말 한국다운 것이지 않을까 싶네요. 실제로도 한국인들과 외국인들 모두 인사동의 간판에는 눈길이 간다고 합니다. 


 도톰보리, 현재 우리나라 대다수의 번화가, 그리고 인사동의 간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아마 이 시리즈는 쭉 이런내용일겁니다. 오사카여행기나 진짜 도톰보리의 이야기만을 기대하셧다면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한 건축학도가 느끼는 것들을 그냥 써내려가는 시리즈니까요. 오사카 여행의 중심지 도톰보리 거리를 거닐며 간판을 느끼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간판들의 문제에 대해까지 이야기해보는 자리이죠.

 자 이제 결론을 내기 위해 다시 간판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난잡한 번화가의 간판과 도톰보리 간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도톰보리의 간판들에게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죠. 정체성이 있다는 것에서 개성이 표출되고 그 개성이 모여 인기있고 유쾌한 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도톰보리나 우리나라 번화가나 똑같이 잘 보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으시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번화가들의 간판은 그저 옆 간판보다 더 잘보여야되고 옆 간판을 가리면 더 좋다는 식의 이기심으로 가득한 간판이죠. 상생을 포기한 이기심에 결국에는 전체적인 파이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봅니다. 간판은 우리가 생각하는 홍보 효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계속 말했듯, 건물과 가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런 문제점을 도톰보리의 재미있는 간판을 보다가 느꼈을 뿐이지, 우리도 도톰보리의 간판을 따라해야 한다! 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도톰보리의 간판이 좋은 이유는 정체성과 맥락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가게의 개성과 일본인들의 정서와 도톰보리라는 거리의 맥락이 모두 맞아 떨어져 도톰보리의 간판이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정서, 정체성, 맥락에 맞는 간판을 찾아야합니다. 앞서 소개한 인사동이 그 대표적 예죠. 요즘은 인사동뿐 아니라 유명 관광지나 수원, 경주같은 전통도시에서 이렇게 한글을 강조한 깔끔하고 예쁜 간판으로 교체하자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 생각에는 여백과 한글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인사동의 간판은 아무리 창찬해도 부족할만큼 아름답게 느껴지거든요.


 간판천국 도톰보리를 걸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유쾌한 도톰보리의 간판들을 보느라 재미있기도 했고, 우리나라의 간판들을 걱정하기도 했고, 건물이나 자연지형만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하나의 훌륭한 랜드마크가 된 도톰보리의 간판을 보며 새로운 생각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두서없고 하나의 주제도 없는 그냥 간판을 보며 떠오른 것들을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글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간판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알고싶네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간판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라며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