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정원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불교와 유교등 종교를 공유하며,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한 국가로 예로부터 많은 공통점을 지닌 나라였다.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했으며 동시에 세 나라는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여 확연한 차이를 지니게 되었다.

 건축은 각 나라의 문화를 대표한다. 건축이란 흔히들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말도 틀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했을 때, 건축이란 공간을 다루는 것이다. 즉, 건물 뿐 아니라, 정원, 건물, 도시등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모든 공간을 건축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정원은 수 많은 공간중에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공간에 속한다. 즉, 정원은 사용자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공간인 것 이다. 따라서, 한중일의 정원을 비교해보면 세 나라의 사람들은 어떠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정서가 어떻게 정원에 표현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중일의 정원은 이름부터가 서로 다르다. 한국은 정원을 庭苑이라고 표기하였다. 현재는 庭園으로 주로 표기하는데, 이는 메이지유신시대 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가 강점기 당시 이식된 것으로 한국정원학회는 1982년 庭苑을 정식 표기로 채택하였다. 한자를 풀이해보면 苑은 나라동산 원으로 울타리로 경계를 만들어 놓은 뜰을 뜻하며, 園은 동산 원으로 집 앞뒤 혹은 좌우에 만들어 놓은 뜰 혹은 큰 집에 만들어 놓은 동산을 뜻한다. 약간의 뉘앙스차이지만, 한자표기를 통해 한국과 일본 정원의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경관을 경계를 만든다는 개념이며, 일본의 정원은 집의 내부에 자연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정원이 아닌 원림(園林)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뜰을 만들어 숲을 만든다는 해석처럼 정원을 조성하여 하나의 자연경관을 만든다는 중국 정원의 개념을 미리 엿볼 수 있다.


<가옥정원의 대표적 정원인 선교장>

<별서정원의 대표적 정원인 소쇄원>


 앞에서도 설명했듯, 한국의 정원은 庭園이 아닌, 庭苑으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르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화원, 임천, 임원, 가원, 원림, 궁원등의 여러가지 용어로 표기했으며. 정원의 형태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거나 (임천, 임원 등) 정원이 위치한 곳의 상위공간에 따라 명칭을 정하기도 하였다. (가원, 궁원 등) 우리나라의 정원은 궁궐정원, 가옥정원, 서원정원, 별서정원등으로 나누기도 하였는데, 이는 정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나뉘게 된 것이다. 궁궐정원, 가옥정원, 서원정원의 경우 건물의 외부공간을 활용하여 자연을 끌어들인 형태로 본건물이 주가되고 정원이 외부공간이 되는 형태이며, 별서정원은 휴식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정원을 주가 되는 휴식·녹지 공간의 형태이다.

 우선, 첫번째로 궁궐정원, 가옥정원, 서원정원등의 일반적인 형태의 정원의 핵심 개념은 '자연을 끌어들이는 공간'이다. 이 개념은 정원을 넘어 우리나라 한옥공간의 핵심개념으로, 자연을 강조하지도, 해치지도 않은 채 물흐르 듯 인간의 영역인 건축과 자연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잇는 것이다. 이러한 한옥과 한국의 정원의 개념 때문에 세 나라의 정원을 비교해봤을 때 가장 질박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간소하고 수수하지만 한국의 정원을 깊게 볼 수록 그 매력이 드러난다. 

 건물과 자연의 경계가 되는 담에서부터 한국의 건축적 특징이 드러나는데, 삼국의 건축물에서 한국의 담이 가장 낮다. 이는 눈높이에서 바라보았을 때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에 차이가 없음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자연을 그대로 정원에 담고, 정을 확장하면 마당이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자연을 아끼고 존중하는 정서가 잘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담의 높이 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드러나는데, 한옥을 건축할 때는 땅을 고르는 것보다 땅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는 쪽을 선호하며, 그 때문에 담의 형태조차 땅의 높낮이를 따라간다. 어떻게보면 담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의 높이에 따라 들쑥날쑥한 모습이 수수함을 넘어 엉성해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선은 한옥에서 담길을 따라 걸어보면 사라진다. 앞에서말했듯 담길을 따라걷다보면 자연이 곧 정원이되고, 정원이 곧 마당이되는 것이다.

 가옥정원의 경우에는 정원을 꾸미지 않는 것이 한국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을 꾸미지 아니해놓고 정원이라고 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위에서 설명한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가옥내의 정원의 경우 주로 마당을 정원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극단적으로 인공적인 조성을 배제하고 마당을 비워두는 것이 일반 가옥정원의 구성개념이었다. 마당에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단순 숲이나 물 뿐 아니라, 빛·바람·냄새·소리까지 모두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우리나라 가옥정원의 개념인 것이다.

 정원에 사용될 식재에도 특징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원에 사용되는 식재는 대부분이 건축물 주변에 있는 자연공간의 식재이다. 나무 한 그루조차 주변 자연과 같은 나무를 사용하여 주변 자연과의 동일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표현하였다. 바로 주변에 숲이 없거나 궁궐정원등 큰 규모의 정원에는 외부에서 식재를 가져와 심었는데, 주로 활엽수를 심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들이 대부분 침엽수이고, 소나무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서상 침엽수를 사용할 것 같지만, 실제 정원에서는 활엽수를 심었다. 그 이유는 활엽수는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잎의 색이 변하기도 하고 풍성해지기도 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 모습이 시간의 경과와 자연의 순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사계절 변하지 않는다하여 침엽수를 사랑했지만, 그들 또한 감성적인 공간인 정원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상징하는 활엽수를 보며 자연을 느끼고 세월이 흘러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렇듯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하여 자연성을 지향하고 존중하는 것이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이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인들의 경천사상과 자연숭배사상에서 이런 개념들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정신들이 계승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화를 만들었고, 이러한 문화가 정원에 반영된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 원림인 소주 졸정원>


 중국은 앞서 설명했듯 정원을 원림이라고 했다. 중국의 원림은 그 규모에서부터 한국과 일본의 정원을 압도한다.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인만큼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사랑했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사상이 원림에 잘 표현된 단어가 소천지이다. 소천지(小天地)란 원림의 핵심 개념으로 작은 하늘과 땅, 즉 작은 세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중국 원림을 소천지라고 하여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보았다. 거대한 규모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정원이 감상과 휴식의 공간인 것에 비해 중국의 원림은 산책과 유희의 공간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국은 한국과 일본보다 정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조금 더 빨랐는데, 일찌기 원림건축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건물만큼 중요하게 정원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가치있게 여겼고, 하나의 건축분야로서 학문으로 발달시켜왔다. 한국의 정원에 비하면 중국의 정원은 인공적인 특징이 매우강하다. 하나의 분야로 일찌기 자리잡았고, 인공적인 특징이 강하다보니 원림은 단순한 정원을 넘어 종합건축의 하나로 발달했다. 

 원림은 인공적으로 조성하되, 원림 자체가 하나의 자연공간과도 같아야한다는 조성 개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영토가 매우 넓다보니 지역마다 기후도 다르고 식생도 다른데, 원림에서는 주변에서 보기힘든 형태의 자연공간까지 모두 즐길 수 있도록 하나의 정원 안에 산, 폭포, 강, 호수, 동굴등 온갖 자연 지형지물을 넣기 위해 노력하였다. 원림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환경과 원림을 구성하는 건축물로 나눌 수 있다.

 원림을 구성하는 인공 자연환경으로는 산을 재현한 가산, 동굴을 재현한 산동, 원림의 핵심이자 물을 원림에 재현한 연못등이 있다. 산, 연못, 폭포 등의 자연이 어느 곳에나 있지는 않지만, 중국의 원림에는 모두 한 곳에 조성하였다. 이는 한국에서 정원을 만들 때 사용하던 원리인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소천지개념을 말했듯, 중국의 원림은 자연을 조금 가져와 건축물 내부에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전체를 축소시켜 건축물 내부에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림에는 다양한 자연의 형태를 구성요소 사용하였다. 특히 연못의 경우 중국 원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원림 설계 이론서인 '원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원림의 반은 물이고, 1/3은 수목이며, 나머지 1/6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원림은 기본적으로 수공간을 중심으로 수공간을 보조하는 수목, 그리고 중간중간 휴식과 감상을 할 수 있는 건축물등으로 나뉠 수 있다. 

 원림을 구성하는 건축물에는 연회를 즐기거나 정원의 주인이 휴식하는 청, 원림의 중간중간에 위치하며 휴식과 감상을 할 수 있는 정,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지은 누, 작은 정자와 같은 헌등의 건축물이 있으며, 건축물과 건축물을 연결하는 통로 공간인 낭, 통로에서 원림을 볼 수 있는 누창과 도화창, 그리고 중국 건축의 특징인 둥근형태의 문인 월량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규모의 자연요소와 다양한 건축물의 조화로 인해 중국의 원림은 웅장하며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에게 쉴 틈 없이 다른 형태의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중국이라는 국가의 거대한 토지와 다양한 기후와 식생 그리고 수많은 인구가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의 웅장하고 다양한 것을 즐기는 문화를 형성했고, 그런 문화들과 중화사상, 자연에서 유희하고 체험하는 풍류의 문화, 대륙적 세계관이 결합되어 원림을 형성했다.


<땅가름과 돌놓기가 사용된 일본의 대표적 정원 료안지>


 일본의 정원은 한국과 중국의 정원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인다. 일본 정원은 한국과 중국의 정원들의 특징을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형태가 전혀 다르다. 규모나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정원과 닮아있으며, 구성요소가 자연의 일부를 옮기는 게 아니라 전체를 축소한다는 개념은 중국과 닮아있다. 일본의 정원이 한국과 중국의 정원과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일본 정원의 핵심개념이 '비유'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원에는 식생, 수공간등 자연 지형지물의 활용을 최소화했다. 자연요소들을 흙, 자갈, 돌에 비유를 하여 하나의 추상화처럼 정원을 구성하는 것이 일본 정원이다. 일본 정원의 비유를 위해서 땅가름과 돌놓기라는 일본 정원 양식이 사용되었다.

 땅가름은 흙과 자갈을 바닥에 고르게 깔아서 정원의 틀을 만들고 자갈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막대기, 빗자루 등으로 정리하여 자갈에 물결무늬를 만드는 정원 양식을 말하는데, 이 때 흙이 땅, 하얀 자갈과 물결무늬 물을 상징한다. 즉, 땅가름 해놓은 정원은 자연의 기본 토대가 되는 물과 땅을 비유한 것이다. 두번째 양식인 돌놓기는 땅가름을 통해 영역을 설정해 둔 정원에 일정 규모의 돌을 배치하는 과정을 말한다. 하얀 자갈위에 돌을 배치하고 돌 주위에 이끼나 잔디등을 까는데, 이 때 이 돌이 산 혹은 도시나 건축물을 상징한다. 즉 정원의 규모나 분위기는 한국의 정원과 닮았지만, 자연 전체를 축소하여 담는 다는 것은 중국의 정원과 닮았으며, 전체적인 모양과 구성원리는 양국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본 고유의 방식이 사용된 것이다.

 비유를 사용한 점 때문에 일본의 정원은 매우 독특하며, 이해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봤을 때는 흰 자갈 위에 돌이 올려져 있는 것이 전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땅과 하늘, 바다 그리고 산과 나무, 강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본의 정원은 이렇듯 한국과 중국의 정원과 그 형태나 개념이 매우 다르고 독특하다. 이는 한국과 중국은 대륙에 속하며, 서로 육로를 통해 왕래가 잦은 것에 비해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으며, 대륙이 아닌 섬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문화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다가 일보인 특유의 폐쇄적, 섬세함, 축소지향성이 정원에도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다소 작위적이고 과하게 인위적인 면도 있지만 일본의 정원이야말로 일본인의 섬세함이 잘 녹아있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의 정원은 사찰과 신사위주로 발달했는데, 섬세함과 고요함, 간결함이 특징인만큼 일본의 종교 건축에서 더 그 효과가 극대화되고 정원을 이용하는 사람을 사색적으로 만들고 절제라는 교훈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삼국은 매우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정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세 나라는 같은 문화권이지만 서로의 고유한 문화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 특징이 정원건축에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정원은 '차경의 공간', 중국의 정원은 '소천지', 일본의 정원은 '비유와 절제의 공간'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