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빛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빛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으니
세상은 기꺼이 즐길만 하다
<은밀하게 황홀하게 전시 中>
과연 우리는 ‘빛’을 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빛은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과학적 정의로서 빛은 하나의 파장에 불과하여 그 물질 자체로서는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빛의 형상을 통하여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Charles Harbutt <blind boy, 1960’s>
빛은 눈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눈먼 소년처럼 만져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존재’일까?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따스한 햇볕이 내리는 날에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우리는 그림자의 존재를 볼 수 있다.
이 그림자는 빛이 그려낸 그림이며 형상이다. 광원지의 각도와 시간의 차이에 따른 그림자의 채도와 크기는 있지만 ‘밝음’이 빚어낸 매체라는 측면은 변함이 없다. 누구나 각자 어렸을 때 이러한 그림자를 가지고 여러가지 놀이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손바닥을 이용하여 그림자로 ‘새’를 만들어 자신의 방에서 날려보내기도 하였을 것이고 ‘강아지’를 만들어서 함께 놀았던 경험이 우리 기억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지역에서는 이른바 ‘그림자 인형극’이라는 독특한 연극문화가 존재하였는데 바로 ‘인형의 그림자’를 활용하여 실루엣으로만 공연을 하는 연극이다. 이렇듯 빛을 활용한 그림자에 대한 미적 접근은 개개인에서 부터 하나의 문명까지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으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관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필자는 ‘빛’이라는 존재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을까.
앞서 전시공간에 대한 글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시각예술과 공간예술에서 빛은 작품의 의미를 심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예술가와 건축가의 표현을 더욱 다양하고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서도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빛’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시선에 대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사실 필자의 전공은 예술이나 건축이 아니다.
학부에서 사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취미로서 시작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곁눈질로 건축과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빛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자들처럼 심도있는 예시와 방법론을 제시하며 ‘빛과 그림자가 가지는 독특한 시선과 공간의 재구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필자와 같이 평범한 사람, 즉 비전공자이면서도 시각예술과 공간예술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쉽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시선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scattered> photo by Dongjookim
본 사진은 필자가 방문 틈으로 비추는 빛을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빛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빛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할 독자들이 상당히 존재하리라고 생각한다. 직선일까 아니면 조그만한 분자들의 집합일까. 위 사진을 통해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공간에 있어서의 빛의 특징은, 공간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점이다. 보통 빛에 대하여 생각할때 많은 이들은 해에서 뿜어져 나오는(혹은 스타워즈의 광선검처럼) 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사진에서 보 듯이 1자 모양의 문틈에서 유입된 빛이 ‘벽’이라는 공간을 만남으로써 흩뿌려지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빛은 광원지에서부터 유입되는 각도와 광량도 중요하지만 그 빛이 닿는 매체의 질료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 이러한 빛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다면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보더 더 쉽게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즉 한정적으로 들어온 빛이라도 공간을 활용한다면 매체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공간> photo by Dongjookim
<Goethe-Institut Seoul> photo by Dongjookim
그렇다면 공간의 분위기 연출은 어떠한 것일까?
필자는 공간예술에 있어서의 조명을 사용할 때, 광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주변부 명암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조명을 잘 활용하더라도 주변부의 배경이 조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마치 보색이 이뤄지지 않는 색의 조합을 생각하면 공감이 한층 더 쉽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노란색’을 돋보이고 싶어한다고 가정할 때, 배경의 색은 검정색이 가장 알맞은 보색효과를 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검정색 배경이 아니라 ‘겨자색’이나 ‘주황색’ 배경을 설정한다면 그 보색적 효과가 온전히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조명을 통한 공간연출도 마찬가지다. 위의 사진은 필자가 거실의 모든 불을 꺼놓은 상황에서 방의 전등만 켜두고 거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주변부를 어둡게 설정함으로써 ‘문’과 ‘문틈 사이로 유입되는 '빛’을 돋보이게 하고, 필자가 의도하고 싶었던 공간 연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두번째 사진 역시 주한독일문화원의 천장을 촬영한 사진인데, 오히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흰색 벽과의 대조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가 새롭게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시디자인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작가의 의도와 예술관을 보충하는데 많이 사용되며 전시장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즉 공간예술에 있어서 빛을 통한 구성을 의도하려면 사물을 바라볼 때,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부분을 골고루 살펴보는 섬세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훈련이 거쳐야할 것이다.
<walking with shadow> photo by Dongjookim
<drawn by light, Baum> photo by Dongjookim
마지막으로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사실 우리가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어려운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촬영하러 나가면 곧 알 수 있겠지만 주로 태양이 떠있는 시각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와 심도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림자가 선명하면서도 길게 늘어지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해 질 녘이나 오후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대에 태양은 하늘 중앙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낮은 위치에 존재한다. 즉 90도의 위치가 아니라 40~60도 정도의 위치에 떠있다. 당연히 이 시간대에는 그림자가 길고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어있다. 위의 두 사진 역시 오후 겨울철 기준으로 15시~17시 사이에 촬영한 사진이다. 해가 만약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면 벽에는 그림자가 사진과 같이 선명하고 커다랗게 반영될 수 없다. 그러나 상당히 낮아진 해의 고도로 인하여 단순한 외벽에 하나의 나무가 그려졌고 사람이 걸어가는 형상이 나타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외벽과 달리 내부 공간에 있어서 조명의 활용은 비교적 용이하다. 스튜디오와 마찬가지로 조명을 연출자의 의도대로 광량과 각도를 조절할 수 있으므로 공간 구성에 있어서 소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인위적인 조명이 아니라 자연광을 통하여 건축물에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을 하고자 한다면 창문의 위치나 벽의 구성을 설계함으로써 자연광이 유입되는 시간에 따른 공간 연출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조명과 그림자를 통한 공간예술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부족하게나마 소개하였다.
‘빛’이라는 존재가 조형예술에서부터 건축이라는 공간예술까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었고 이를 정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빛’을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한다면 보다 나은 시선을 가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본 주제에 대한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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